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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Tableau (불)

원래 벽이나 천정등에 고정되어 있는 회화에 대하여, 이동할 수 있는 판화(版畵)라는 의미 로 쓰이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말기의 미이라의 초상, 비잔틴 미술의 이콘, 중세 르네상스의 제단화가 이에 해당되나, 오늘날에는 캔버스나 화지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보통 액자에 넣어 독립된 회화 공간을 만든는 것이 특징이다. 이 경우 에튀드나 밑그림 등 은 포함되지않고, 어디까지나 완성된 회화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때의 역어(譯語)로는 그냥 회화 작품이라 한다.

 

탈구축(deconstruction)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의 입장 일반을 표명하는 용어. 탈구조나 해체로도 번역된다. 그 사유 방식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작업, 미셸 푸코와 자크 라깡, 줄리아 크리스테바, 후기 바르트의 입장 등에서 찾아지며, 대체로 구조주의에서 후기 구조주의 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시점은 1968년 5월 혁명이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은 특수한 정치적 패배와 환멸의 형태와 무관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후기 구조주의는 언어가 고전적 구조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보 다 훨씬 불안정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미술 비평의 경우 이 용어가 실제적으로 적용된 시기는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이며 미국 의 비평권 내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흡수되어 나타났다. 일단 그것은 탈모더니즘의 입장을 표방하면서 인식론적인 측면에서는 모더니즘의 인식 구조와 그 한꼐를 드러낸다. 이에 따라 클레멘트 그린버그와마이크 프리드의 모더니즘 입장 이랍륚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바탕 으로 하는 단선적인 진보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목적론적이며 역사주의적인 인식론의 형태로 이해되며, 그들이 주장하는 회화에서의 평면성의 획득 또한 이같은 역사주의적 인식 과정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기 구조주의는 모더니즘의 가치 체계 및 규범 이 진리, 본질, 독창성, 순수성 등의 절대 개념에 상반되고 대립되는 요소들을 제거해 왔던 사실에 주목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복합성의 차원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처럼 복합성의 차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탈구축의 방법론을 많은 부분 조각에 적 용한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경우처럼 매체의 다양성이라는 조건으로 표출된다. 그것은 모더 니즘의 매체의 순수성과 인식 구조의 단면성에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그 구체적 인 양상은 미니멀 아트 이후 조각 분야에서의 키네틱 아트 혹은 사진, 비디오 등에서 나타 나는 비조각적인 요소(움직임, 기계 등의 매체)의 사용에서부터 건축과 풍경이 조각의 구성 요소가 됨으로써 모더니즘 이전에 있어왔던 인식 구조상의 미분화된 상태를 극복, 복합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지예술까지를 포괄한다. 회화에서의 해체적 충동을 설명하기 위해 크레이그 오웬스는 텍스트성이나 알레고리 개념을 사용한다. 그것은 정반대의 의미들 이 복잡하게 대립되어 있는 상태이거나 완결된 형태가 아닌 끝없이 진행된다는 의미의 유보 와 지연을 통한 불확정의 상태, 혹은 해독불가능성의 의미로 나타나며, 양식상으로는 불화와 단절을 초래하는 요소들의 병렬, 축적, 차용 등으로 변별된다. 이에 상응하는 작품으로는 라 우센버그의 컴바인 아트와 로버트 롱고의 영화 스틸을 차용한 그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기호의 복합체로 이루어진 문화나 신화를 해체하는 입장에서 이외의 많은 재현회화를 통해서 그림의 층위를 드러낸다는 탈신비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신디 셔먼류의 작품을 통해서는 이원적 대립 관계의 제1원리에 따른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드러나는 남성의 대립물로서의, 혹은 타자로서의 여성에 관한 인식을 유도한다. 탈구축, 혹은 해체 전략이 어 떤 특정한 사유 체계와 정치구조 및 사회제도의 전체계가 힘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논리를 발가벗기려는 시도인 한에서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실천이다. 또한 후기 구조주의가 당대 의 정통 좌익 정치가 실패했음을 비난함에 있어서는 정당했던 것만큼 그것은 부분적인 진실 을 갖는다. 그러나 실제로 탈구축의 전략은 비역사적이고 정치적으로는 회피적인 무정부주 의나 쾌락주의적 성향을 불가피하게 드러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술 비평의 경우 도 구체적인 현실 접근이나 적극적이며 총체적인 인식을 결여한 채 단지 형식상의 확장만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탈수축의 본래의 성과를 살리기 위한 한 방편으로 미 술 비평에서의 탈구축의 적용범위와 가능성도 충분히 타진돼야 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그것이 갖고 있는 인식론적 한계가 어디에 있으며 또 현재의 문화 양상을 반영 함에 있어 왜 전망의 제시가 불건강한지를 검증하는 일이다. 특별히 탈 구축의 부분적인 수 정으로 에드워드 W. 사이드의 비평 이론이 있고 전면적인 비판적 해석으로 프레데릭 제임 슨과 테리 이글턴의 비평이론이 있다.

 

탈회화적 추상(Post Painterly Abstraction)

'후기 회화적 추상' ' 회화적 추상 이후의 추상' 등으로도 불린다. 1964년 미국의 평론가 클 레멘트 그린버그가 스스로 기획한 전시회에 붙인 이름이 일반화된 것. 여기에서 쓰인 회화 적이란 독일의 미술사학자 뵐플린의 개념을 원용한 것이다. 뵐플린은 '회화적'이라는 개념을 바로크 미술에 대해서 쓰고 있으나, 그린버그는 이 개념을 잭슨 폴록, 드 쿠닝 등의 추상표 현주의에 대해서 쓰고 있다. 탈회화적이란 색채의 명암의 대조가 강하고, 필치나 페인트가 뜨겁게 교차하는 추상표현주의 다음에 일어난, 차가운 추상계열의 작품을 가리킨다. 즉 '회 화적'이었던 추상표현주의를 정리하고 초월하는 새로운 회화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폴록 이나 드 쿠닝을 무조건 비판의 목표로 삼거나, 추상표현주의의 중핵을 차지하고 있는 액션 페인팅을 부정적으로 계승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액션 페인팅이 지니고 있는 우 연성을 미학적으로 순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었다. 따라서 모리스 루이스, 헬렌 프랑켄 텔러, 폴 젱킨스, 줄즈 올리츠키, 케네드 놀런드, 엘즈워드 켈리, 프랭크 스텔라, 잭 영거맨, 앨 헬드, 래리 푼즈 등으로 대표되는 이 계열의 추상은 명확한 형태를 지니고, 명도 높은 맑 은 색면에 의해 구성되며, 작가의 개성적 표현은 가능한 한 억제시킨 것이 특징으로, 주로 하드엣지 계열의 표현 경향을 가리킨다

 

탱화(幀畵)

불교 미술의 일종. 단폭(單幅)의 천에 그림을 그려 벽에 거는데, 가장자리에 테를 대고 심 을 댄 뒤에 위에다 걸끈을 매달아 옮겨 걸고 접을 수 있도록 한 화폭. 벽화가 권축화(卷軸 畵)로 발전하는 과도기적 형식으로 돈황 석굴 가운데 탱화가 발견된 곳이 많다. 내용은 대개 내용은 불상 그림 및 밀교단장만다라(密敎壇場曼茶羅) 등이다. 당시에는 '공덕 화(功德畵)'라고 불렀으며, 불교 신도들의 공양,기복,참배 등에 이용되었다

 

터치 touch (영) touche (불)

본래는 접촉이라는 뜻이나 미술 용어로서는 필치(筆致), 필촉(筆觸), 필세(筆勢) 등으로 번 역된다. 터치는 작자의 감동, 감격을 단적으로 화면에 전하는 구실을 하며, 유화 기법 가운데서 중요 한 비중을 차지한다. 터치는 표현 기술의 유력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종종 작가의 주관적인 심정을 화면에 나타내므로, 그 작가의 개성이 나타나는 경우가많다. 특히 인상주의 이후의 주관적인 회화에서는, 색조 분할의 이론에 따라 분할된 필촉, 즉 터치 가 중요시되었다. 모네, 반 고흐, 뭉크, 루오, 블라맹크 등은 각기 개성적이고 특징적인 터치 를 써서 독자적인 표현을 전개하였다. 영어로 리터치 retouch, 프랑스어로 retoucher 는 다시 터치를 가한다는 뜻에서 보필(補筆), 수정(修正)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한번 완성된 화면에 다시 붓을 가하는 리터치 는 사진 수정의 경우에, 르투셰는 가필(加筆) 바니쉬의 명칭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끌로드 모네 [정원에서의 오찬] 1873. 162*203cm 유채 파리 오르세미술관

 

테라코타 terra-cotta (이태리어)

구운 흙,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 어.구우면 단단해지고 치밀해지는 점토의 성질을 이용해서 만든 여러 가지 형상의 조각이나 건축 장식용 제품.여러 색깔과 특성을 지닌 점토를 이용하 거나 또는 화학 약품의사용,구워내기 방법 등을 이용해 다양한 색채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진흙으로 입체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이용되었으므로 ,테라코타 조각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의 도기제작기술이 발견되었던 시기까지 소급된다. 점토로 상을 만들 때 는 작은 물건을 만들 경우는 속까지 전부점토로 채우나, 큰 작품의 경우에는 작은 물건을 만들 때처럼 점토로 전체를 만든 후 점토가 반쯤 말랐을 때 여러 부분으로 조각 내어 속 을 파낸 후 진흙물을 발라 다시 짜맞추거나, 고리 또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감아 올리는 방 법을사용한다. 또 여러 개의 복제품을 만들 경우에는 석고나 테라코타 등으로 틀을 만들어 찍어낸 후 가 마에 굽는 방법을 취한다.색깔을 넣고자 할 때는 형을 만들 때,또는 만든 후 색깔을 넣은 진흙물을 바르며 ,광택을 원하는 경우에는 가마에 구워낸 후 유약을 칠하고 다시 굽는다. 유약 칠을 하면 기후에 견디는 힘이 더 강해져 테라코타를 건축 장식물에 사용하기가 더욱 유용해진다.20세기에 들어와서 테라코타는 프랑스의 마이욜 등 현대 조각가들에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권진규(權鎭圭)가 훌륭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테크놀로지 아트(Technology Art)

1970년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예술 동향으로 키네틱 아트에서 발전한 것. 따라서 키네틱 아트와 명확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키네틱 아트 가 1970년대의 상황에 맞게 변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키네틱 아트로서 대표되던 기술과 예술의 결합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 되었으나, 1970년대 초 석유 파동과 불황, 환경보고운동의 여파로 급격히 퇴조를 보였다. 그 러나 테크놀로지 아트는 결코 1960년대의 키네틱 아트의 부활이 아닌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특징은 키네틱 아트가 기술적으로 복잡한 것을 추구했던 데 비해, 테크놀로 지 아트는 단순하고 안정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며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1978년 1월부터 7월까지 미국 앨라배마 주의 한츠빌 미술관에서 개최 된 '예술의 에너지전'에서는 제2세대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테크놀로지 아트의 체질로 볼 때, 그것의 취급이나 보급에 대한 문제접이 없는 것은 아니지 만, 현대인의 의식 환경 속에 과학 기술보다 깊이 침투되어 있으므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접축은 피할 수 없고, 따라서 적극적인 공존을 지향한 작품들이 증가하는 것은 필연적인 추 세이다.

 

템페라(tempera)

회화 재료. 달걀 노른자, 벌꿀, 무화과즙 등을 접합체로 쓴 투명 그림물감 및 그것으로 그린 그림. 수성과 유성이 있어 후자를 유성 템페라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첸니니는 템페라 라는 단어를 매체와 거의 같은 말로 사용했으며, 바자리 역시 유화물감이나 바니쉬로 굳힌 안료의 혼합물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했다. 따라서 템페라는 프레스코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방법이 적용될 수 있었던 말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달걀 노른자는 유화제가 아니며, 이 런 이유로 템페라의 판단 기준이 유화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템페라 화법에서 이것을 제 외시킨다. 템페라 화법은 건조가 빠르고, 또 엷고 투명한 물감의 충이 광택을 띠어 덧칠하면 붓자국이 시각적인 혼합 결과를 낸다. 또 일단 건조된 뒤에소 변질되지 않고, 갈라지거나 떨어지지도 않으며, 온도나 습도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또 빛을 거의 굴절시키지 않 아 유화보다 맑고 생생한 색을 낼 수 있어 벽화 등에 아주 적합한 기법이다. 붓의 움직임이 원할하지 못하므로 색조가 딱딱해지는 흠이 있고, 수채화나 유화같이 자연스러운 효과와 명 암 및 톤의 미묘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템페라 화법이 유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 세기 또는 13세기 초로서 15세기에 유화가 유행할 때까지 패널 그림의 중요한 기법이 되었 다. 중세의 성화를 그리기에 적당해 베를링기에리와 두치오에서부터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에 이르기까지 여러 화가들에 의해 애용되었다. 그 후 소홀히 취급되다가 19세기에는 무대 배경을 그릴 때 응용되었고 20세기에 와서 일부 화가에 의해 부분적으로나마 부활되었다.

 

퇴폐미술전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행해진, 현대 미술을 탄핵하기 위한 전람회. 독일 국내의 미술관, 화 랑, 개인 컬렉션에서 압수한 20세기의 모든 전위 미술 작품이 그 대상이었다. 특히 표현주의 의 회화에 엄격하여 이 파가 행한 색채의 해방, 형태의 의도적 왜곡, 추상표현 등의 여러 실 험이 비 독일적인 타락·퇴폐라고 지목되어, 그 미술가는 제작을 금지당했고, 작품은 몰수되 었다. 비방의 플래카드와 팜플렛이 충만했던 이 전람회는 1937년 뮌헨 및 베를린을 시발로 하여 독일의 주요한 도시를 순회하였다. 이 때 압수된 작품의 수는 1만 7천점, 이 가운데서 4천점 이상이 1939년 5월 베를린 소방서에서 소각되었고, 약 2천점이 같은 해 6월 뤼체른에 서 열린 미술품 경매로 국외로 흩어졌다. 공직에서 추방되고, 바우하우스 등의 거점을 폐쇄 당한 독일의 전위미술가들은 잇달아 국외로 탈출했는데. 스위스의 요양소에서 병상에 누워 있던 표현주의 화가 키르히너는 자신의 조국의 예술의 앞날에 절망하고, 당국의 폭거에 항 거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1488?~1576)

이탈리아의 화가. 베네치아파의 회화적인 색채주의를 확립하였고, 종교화와 초상화를 많이그렸는데, 색채 감각 이 뛰어나 ‘물감 대신 사람의 살을 녹여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들을 정도였다. 몇 점의 자화상 등에 보이는 성격 묘사의 예리함은 그의 투철한 사실성의깊이를 말해 준다. 주요 작품으로는 〈개를 데리고 있는 입상〉 〈파르도의 비너스〉 〈큐피드와 비너스〉 〈카를 5세의 기마상〉 〈성애와 속애〉 〈성모 승천〉 등이 있다.

 

틴토레토 (Tintoretto,1518~1594)

이탈리아의 화가.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염색 장인이었기 때문에 작은 ‘염색 장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티치아노의 제자였으나, 1545∼1546년 로마를 여행하며 미켈란젤로 및 마니에리스트들의 영 향을 받았다. 인체 해부·동적 표현·극적 구도의 전개 방법을혼자 힘으로 깨닫고 원근법을 연구하여, 르 네상스 시대 베네치아파의 대표적인 색채 화가가되었다. 1548년의 〈사라센 인의 해난 구조〉에는 그의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최후의 만찬〉 〈목욕하는 수산나〉 〈베데스다 연못〉 〈이집트의 성모 마리아〉 등이 있다.